예지예정론 소고: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의 통합적 이해
로마서 8장 29절 "미리 아신 자들"을 둘러싼 예지예정 논쟁을, 인식의 순서인 "아래로부터의 예정론"과 존재의 순서인 "위로부터의 예정론"이라는 개혁신학의 틀로 통합해 짚어본다.
예정론은 개혁신학의 핵심 교리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특히 로마서 8장 29절의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라는 구절을 둘러싼 "예지예정론" 논쟁은 오랜 신학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알미니안주의자들과 몰리나주의 계열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장차 믿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를 예정하셨다"는 조건적 선택론을 주장해 왔고, 이는 결국 구원의 결정권을 하나님과 인간이 나누어 갖는 신인협력설로 귀결된다. 본고는 "아래로부터의 예정론"과 "위로부터의 예정론"이라는 구분을 통해 이 논쟁을 해소할 수 있는 신학적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제 제기
"아래로부터의 예정론"과 "위로부터의 예정론"은 서로 경쟁하는 두 가지 교리가 아니라, 동일한 예정 교리를 인식하는 두 가지 방법론이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접근: 인식의 순서와 존재의 순서
개혁신학은 전통적으로 "인식의 순서(ordo cognoscendi)"와 "존재의 순서(ordo essendi)"를 구별해 왔다. 이 구별을 적용하면 두 예정론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아래로부터의 예정론은 인식의 순서에 해당한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회심 경험을 돌아보며 "내가 어찌하여 믿게 되었는가"를 자문할 때, 그는 자기 안에서 그 근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를 핍박하던 자, 사도로 칭함 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였다는 고백만이 남는다. 그 결과 그는 구원의 원인을 자기 밖에서, 곧 갈라디아서 1장이 증언하는 대로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신자의 실존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예정 교리에 도달하는 귀납적 경로다.
위로부터의 예정론은 존재의 순서에 해당한다. 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곧 창세 전부터 만물에 대해 세우신 영원한 작정(decretum aeternum)에서 출발하여 개별 신자의 구원에 이르는 연역적 설명이다. 에베소서 1장이 말하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선언이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예지예정론 논쟁에 대한 함의
이 틀은 예지예정 논쟁에 결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알미니안주의의 오류는 "아래로부터의 예정론"이 제공하는 실존적 인식의 순서를, "위로부터의 예정론"이 다루어야 할 존재론적 근거의 자리에 잘못 놓았다는 데 있다. 즉 "내가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아셨다"는 인간 편의 경험적 서사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원인 구조로 그대로 역투사(逆投射)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로마서 8장 29절의 "미리 아심(προέγνω)"을 단순한 지적 예지(foreknowledge as mere prescience)로 읽지 않는다. 성경에서 "안다"는 동사는 히브리적 용법에서 종종 "언약적으로 택하여 관계를 맺는다"는 뜻을 갖는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 아모스 3장 2절
따라서 "미리 아신 자들을 predestine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미래 행위를 관망적으로 미리 내다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사랑 가운데, 미리 그들과 관계 맺기로 정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이 칼빈이 그토록 강조했던 바,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몫은 100%이며 인간의 공로는 0%라는 선언의 신학적 근거다.
로마 가톨릭의 오류 — 구원의 공로를 하나님과 인간이 나누어 가진다는 반(半)펠라기우스적 구도 — 를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경계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위로부터의 예정론"을 "아래로부터"의 인간적 서사로 환원시키는 순간, 은혜는 더 이상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팀 켈러의 정의를 빌리면)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에 대한 보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목회적·신학적 함의
이 두 예정론의 통합적 이해가 주는 실천적 유익은 무엇보다 겸손이다. 신자가 자기 신앙의 근거를 자기 안에서 찾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으로 소급할 때, 그는 자기 신앙조차 자랑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된다. 동시에 이 교리는 확신을 준다. 나의 구원이 나의 변덕스러운 믿음의 강도가 아니라 창세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불변하는 작정에 근거한다면, 그 구원은 결코 흔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예정론과 위로부터의 예정론은 같은 진리를 향한 두 개의 창(窓)이다. 전자는 신자로 하여금 자기 부인과 겸손에 이르게 하고, 후자는 그 겸손 위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송영(頌榮)을 세운다. 예정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간 이해의 완결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개혁신학의 근본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