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끝난 뒤, 나는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용서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믿으십시오.” 수없이 전한 목회자가 강단에서 내려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설교가 끝난 뒤입니다.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했는데, 강단에서 내려온 나는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전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던 날들
“용서하십시오.” 수없이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마음속에서 수없이 다시 꺼내본 날도 있었습니다.
“사랑하십시오.”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애써 거리를 두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면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바라보며 혼자 걱정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말씀을 이미 살고 있다는 착각
어쩌면 목회자는 말씀을 너무 많이 말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말씀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내려놓으라고 말하면서 나는 끝까지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설교를 준비할 때 성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제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계석아, 너는 지금 이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
이 질문이 때로는 어떤 책보다 아프고, 어떤 설교보다 무겁습니다.
의자를 정리하던 성도
그런데 목회하면서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날 교회 행사가 끝난 늦은 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한 성도님이 혼자 남아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 그만하시고 들어가세요” 했더니, 그분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일 오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면 좋잖아요.” — 교회 행사가 끝난 늦은 밤, 의자를 정리하던 성도
그 짧은 한마디가 제게는 긴 설교처럼 들렸습니다. 그분은 믿음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성경구절을 인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의자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말씀을 살아내는 사람의 차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성도들에게 믿음을 요구하기 전에 제 믿음부터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사랑을 말하기 전에 사랑하게 하시고, 용서를 말하기 전에 용서하게 하시고, 섬김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낮아지게 하소서.
삶의 문장이 남습니다
목회를 오래 할수록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내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설교의 문장이 아니라 삶의 문장이 남을 테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강단에 서기 전에 먼저 제 마음 앞에 섭니다.
주님… 오늘 제가 전할 말씀으로 먼저 저를 깨뜨려 주십시오.
그것이 어쩌면 목회자로 살아가는 제가 평생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설교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