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호수의 흉어와 풍어 — 개혁주의 생명신학이 필요한 이유
누가복음 5장, 밤새 그물질하고도 빈손이었던 시몬이 말씀에 순종해 그물을 내리자 배가 가라앉을 만큼 고기를 잡은 사건은 오늘 한국교회가 겪는 영적 흉어와 닮아 있다. 흉어의 자리에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짚어본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베드로)을 제자로 부르신 사건이 기록돼 있다. 말씀을 들으려 몰려든 무리 곁에서, 예수님은 밤새 그물질을 하고도 빈손으로 돌아와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에게 먼저 다가가셨다. 그날의 흉어와 뒤이은 풍어 두 가지 기적은, 신학생은 해마다 쏟아지지만 정작 성도 수는 줄어드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이 왜 지금 필요한가라는 물음이다.
그물을 씻던 어부, 예수님의 강단이 되다
갈릴리 호수는 게네사렛 호수, 혹은 디베랴의 바다로도 불렸다. 그 호숫가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무리가 몰려들었을 때, 예수님은 무리 가운데 있지 않은 이들에게도 눈을 돌리셨다. 배 두 척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이었다. 그중 한 척은 시몬의 배였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워 달라 청하시고, 그 배에 앉아 무리를 가르치셨다. 배를 조금 떼어 달라 하신 것은 온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시몬의 배는 예수님의 강단이 되었고, 시몬 자신도 뜻하지 않게 예수님의 청중 한 사람이 되었다.
밤새 헛친 그물, 그리고 순종
성격이 급하고 거센 시몬이 예수님의 요청에 선선히 배를 내어드린 데는 이유가 있다. 그날 시몬과 동료들은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나름대로 애를 썼을 밤이었던 만큼, 삶의 의욕은 물론 삶 자체에 대한 회의마저 그를 덮쳤을 것이다. 그런 허망함 속에서 시몬은 자기 배 위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셨을 때 지체 없이 순종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을 때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다 — 시몬(베드로), 누가복음 5장
그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두 배에 나누어 실은 고기의 무게로 배가 가라앉을 만큼 컸다.
풍어와 흉어, 두 가지 기적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물음이 있다. 나면서부터 뱃사람으로 자라 게네사렛 호수를 눈감고도 훤히 아는 전문가였을 시몬이, 그날은 어째서 피라미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을까. 이는 시몬을 낮추셔서 그 마음을 비우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볼 수 있다. 한 영혼을 죄악에서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은 때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방법을 쓰신다. 노련한 경험을 내려놓고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님 앞에 겸손히 서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힌 풍어도 기적이지만,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도 빈손이었던 흉어 역시 시몬을 만나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또 다른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영적 흉어
한국교회 전체가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교회 전체를 낮추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교회 성도 수의 급감은 이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교인 수가 늘었다는 교회도 대부분 교회 간 수평 이동이고, 초신자가 새로 등록하는 경우는 크게 줄었다. 출산율 저하로 성도 구성도 역삼각형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유초등부·중고등부 학생 수가 많았고, 그중 다수가 청년부로 이어져 교회의 기둥이 되었지만, 지금은 이 부서들이 활성화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신실한 성도들조차 자녀의 신앙 교육보다 진학에 더 큰 관심을 쏟는 현실을 감안하면, 신자 수 급감이라는 영적 흉어는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개신교 중 장로교파가 다른 교파보다 강세인 나라로, 장로교 신학교들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졸업생만 수천 명, 지금까지 누적으로는 수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신학생을 대거 배출하고 있음에도 초신자 전도는 급감하고 성도 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은, 한마디로 영적 흉어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겸손케 하여 다시 붙잡으시는 것 외에는 이 상황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때 — 5대 솔라
시몬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후 즉각 순종했듯이, 이와 유사한 일이 500년 전 종교개혁자들 가운데서도 일어났다. 중세 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통과 교황의 권위를 성경보다 위에 두는 잘못으로 부패 타락했을 때, 종교개혁자들이 이룬 일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다음의 신앙 원리를 제시했다.
- 오직 성경 — 신앙과 삶의 절대적 기준
- 오직 그리스도 — 구원의 유일한 근거
- 오직 믿음 —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
- 오직 은혜 — 구원은 값없이 주어짐
- 오직 하나님께 영광 — 모든 것의 궁극적 목적
이 5대 솔라로 요약되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계승한 신학이 개혁주의 신학이다.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올바른 것은 개선하는, 성경대로 실천하는 신앙이다.
왜 다시 '생명신학'인가
개혁주의 신학이 이렇게 좋은 신학이라면, 왜 개혁주의 생명신학이 따로 필요한가. 개혁주의 생명신학은 개혁주의 신학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이 5대 솔라를 강조하면서도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해 생명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실천 운동이 바로 개혁주의 생명신학이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의 실천 운동
개혁주의 신학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은 이를 위해 다음의 실천 운동을 제시한다.
- 신학 회복 운동
- 회개 용서 운동
- 영적 생명 운동
- 하나님나라 운동
- 나눔 운동
- 기도 성령 운동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경보다 전통을 앞세운 데 맞서 성경을 신앙과 삶의 절대 기준으로 삼아 복음의 능력을 회복시켰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이 강조하는 '오직 성경'은 같은 맥락이면서도 다른 의미를 지닌다. 중세 교회가 성경보다 전통을 위에 둔 것이 문제였다면, 오늘 우리는 성경보다 우리가 전해 받은 신학을 위에 두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신앙 내용이 새로운 전통이 되어 성경을 강단에서 밀어낸 것이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전통을 두었다면, 오늘 우리는 성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신학을 두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선포하고 가르치면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이들도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자복하는 생명의 역사가 마땅히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전통이 된 신앙만 붙들 뿐 성경으로 승부하는 목회자들이 사라지다 보니, 오늘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잃고 성도 수는 급감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남는 과제 — 영적 흉어에서 영적 풍어로
우리는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시몬과 동료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 그물질하고도 빈손이었던 것이 흉어의 기적이었듯, 이토록 많은 신학생이 배출되면서도 한국교회 성도 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현실은 오늘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영적 흉어의 기적이다. 지금의 신학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고, 잘못을 겸손히 시인한 뒤 생명을 살리는 교육법을 찾기 위해 힘써야 한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의 실천은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것은 고치고 올바른 것은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신학교육이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 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 생명을 살리는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 개혁주의 생명신학의 실천, 곧 신학 회복 운동의 시작이다. 갈릴리 호수의 흉어가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내렸을 때 풍어의 기적으로 이어졌듯, 한국교회가 개혁주의 생명신학의 실천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을 회복함으로써 오늘의 영적 흉어가 영적 풍어로 전환되는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