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이름 속에 흐르는 복음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사람의 이름을 히브리어 뜻대로 이으면 하나의 복음 문장이 된다 — 창세기 5장 족보를 원어로 읽다
창세기 5장은 "~를 낳았고 … 그가 죽었더라"라는 후렴이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족보입니다. 그런데 이 지루해 보이는 장 안에,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사람의 이름을 히브리어 뜻대로 이으면 하나의 복음 문장이 된다는 오래된 해석이 있습니다. 이 칼럼은 그 전통적 해석을 원어로 따라가며 그 안에 흐르는 구원의 약속을 살펴봅니다.
"이것은 아담 자손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זֶה סֵפֶר תּוֹלְדֹת אָדָם (제 세페르 톨레도트 아담) — 창세기 5:1
열 개의 이름, 그 원어의 뜻
| 순서 | 이름 | 히브리어 | 한글음역 | 뜻 |
|---|---|---|---|---|
| 1 | 아담 | אָדָם | 아담 | 사람 |
| 2 | 셋 | שֵׁת | 셰트 | 세우신 자, 지정된 자 |
| 3 | 에노스 | אֱנוֹשׁ | 에노쉬 | 죽을 수밖에 없는 자 |
| 4 | 게난 | קֵינָן | 케이난 | 슬픔 |
| 5 | 마할랄렐 | מַהֲלַלְאֵל | 마할랄엘 | 복되신(찬양받으시는) 하나님 |
| 6 | 야렛 | יֶרֶד | 예레드 | 내려오다 |
| 7 | 에녹 | חֲנוֹךְ | 하노크 | 가르침 |
| 8 | 므두셀라 | מְתוּשֶׁלַח | 메투셸라흐 | 그의 죽음이 (그것을) 가져올 것이다 |
| 9 | 라멕 | לֶמֶךְ | 레메크 | 절망하는 자들 |
| 10 | 노아 | נֹחַ | 노아흐 | 안식, 위로 |
첫 번째 악장 — 죽을 운명 속에 있는 사람
아담 (אָדָם)
'사람'을 뜻하는 아담은 '땅'을 뜻하는 아다마(אֲדָמָה)와 맞닿아 있습니다(창 2:7). 흙에서 난 존재라는 인간의 본질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셋 (שֵׁת)
"하나님이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
כִּי שָׁת־לִי אֱלֹהִים זֶרַע אַחֵר — 창세기 4:25
'주셨다'로 번역된 샤트(שָׁת)가 셋의 이름과 연결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 끊어진 듯한 약속의 계보를 하나님이 다른 '씨'(제라, זֶרַע)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 '씨'는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과 같은 단어입니다.
에노스 (אֱנוֹשׁ)
에노쉬는 사람을 가리키되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강조할 때 쓰입니다. 시편 8:4의 "사람이 무엇이기에"의 '사람'이 이 단어입니다. 아담이 '사람'이라면 에노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게난 (קֵינָן)
전통적으로 게난은 '애가, 조가'를 뜻하는 키나(קִינָה)와 연결하여 '슬픔'으로 풉니다. 아담의 죄로 들어온 죽음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인류의 삶을 슬픔으로 물들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나,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슬픔 가운데 놓였습니다.
두 번째 악장 —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
여기까지가 '인간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이름부터 문장의 주어가 바뀝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가 됩니다.
마할랄렐 (מַהֲלַלְאֵל)
'찬양하다'를 뜻하는 할랄(הלל, 할렐루야의 어근)과 '하나님'을 뜻하는 엘(אֵל)의 결합으로, '복되신 하나님'입니다. 슬픔 한가운데서 시선이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집니다.
야렛 (יֶרֶד)
예레드는 '내려오다'를 뜻하는 야라드(יָרַד)에서 왔습니다. 이 동사는 하나님의 강림을 나타내는 핵심 동사입니다.
- "여호와께서 … 내려오셨더라" (창 11:5)
- "여호와께서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사" (출 19:20)
-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출 3:8)
특히 출애굽기 3:8의 '내려오심'은 건지시기 위한 강림입니다. 복되신 하나님이 내려오십니다.
에녹 (חֲנוֹךְ)
하노크는 '가르치다, 훈련하다'를 뜻하는 하나크(חָנַךְ)에서 왔고, 잠언 22:6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하노크)"에 같은 어근이 쓰입니다. 복되신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가르치십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וַיִּתְהַלֵּךְ חֲנוֹךְ אֶת־הָאֱלֹהִים וְאֵינֶנּוּ כִּי־לָקַח אֹתוֹ אֱלֹהִים — 창세기 5:24
죽음이 후렴처럼 반복되는 장에서 에녹만이 "죽었더라"를 비껴갑니다(히 11:5). 하나님과의 동행 앞에서는 죽음도 마지막 말이 아님을 보여 주는 작은 창문입니다.
세 번째 악장 — 그의 죽음이 가져오는 것
므두셀라 (מְתוּשֶׁלַח)
므두셀라는 '죽다'를 뜻하는 무트(מוּת)와 '보내다, 가져오다'를 뜻하는 샬라흐(שָׁלַח)의 결합으로 풀어 "그의 죽음이 (그것을) 가져올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해석에는 놀라운 사건이 따라붙습니다.
-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창 5:25)
-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으며(창 5:28)
- 홍수는 노아 600세에 일어납니다(창 7:6).
한 사람의 죽음이 곧 다가올 일의 신호가 된다는 이 이름은, 훗날 한 분의 죽음이 모든 것을 바꾸게 될 것을 미리 가리키는 그림자처럼 읽힙니다.
라멕 (לֶמֶךְ)
전통적 해석은 라멕을 '절망하는 자'로 풉니다. 이 이름이 그의 고백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노아 (נֹחַ)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하는 우리를 이 아이가 위로하리라 하였더라"
וַיִּקְרָא אֶת־שְׁמוֹ נֹחַ לֵאמֹר זֶה יְנַחֲמֵנוּ מִמַּעֲשֵׂנוּ וּמֵעִצְּבוֹן יָדֵינוּ מִן־הָאֲדָמָה אֲשֶׁר אֵרְרָהּ יְהוָה — 창세기 5:29
'수고'로 번역된 잇짜본(עִצָּבוֹן)은 창세기 3:16-17의 형벌 언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 수고하다 지쳐, 절망의 끝에서 아들을 안고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하리라" 고백한 사람이 라멕입니다. 절망하는 자가 아이의 이름에 소망을 걸었습니다.
노아흐(נֹחַ)는 '쉬다'를 뜻하는 누아흐(נוּחַ)와 연결되고, '위로하리라'는 예나하메누(יְנַחֲמֵנוּ)는 '위로하다'를 뜻하는 니함(נִחַם)에서 왔습니다. 어근은 다르지만 소리가 닮아 안식과 위로가 한 이름 안에서 겹쳐 울립니다.
열 개의 이름이 말하는 한 문장
사람은 죽을 운명으로 슬픔 속에 있지만,
복되신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가르치실 것이다.
그의 죽음이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로를 가져올 것이다. — 아담-셋-에노스-게난 / 마할랄렐-야렛-에녹 / 므두셀라-라멕-노아
개혁주의 신학의 눈으로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것 중에 자기에 관한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눅 24:27, 4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이 말하는 은혜언약은 창세기 3:15에서 시작되어 아담의 후손을 따라 흐릅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그 약속의 계보이고, 열 이름의 문장은 그 약속을 한눈에 요약합니다.
이 문장 속 '그'는 누구입니까? 사람으로 오셔서(아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자리에 서시고(에노스), 슬픔을 짊어지시며(게난), 내려오셔서 가르치시고(야렛, 에녹), 죽으심으로 절망하는 자에게 안식과 위로를 주신(므두셀라, 라멕, 노아) 분,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를 아는 자라"
אִישׁ מַכְאֹבוֹת וִידוּעַ חֹלִי (이쉬 마크오보트 비두아 홀리) — 이사야 53:3
게난의 '슬픔'은 이사야 53장의 '슬픔(마크오브)'으로 이어집니다. 인류가 지고 있던 슬픔을 하나님이 친히 내려오셔서 대신 지셨습니다.
마치며 — 하나님은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세대는 "그가 죽었더라"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인생이 죽음을 향해 걷는 슬픈 행렬처럼 느껴집니다. 평생 땅을 일구다 지쳐 쓰러지는 아버지들, 아이를 묻고 돌아서는 어머니들, 그리고 라멕처럼 절망의 끝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하리라" 중얼거리는 사람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행렬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지어 부르는 족보 속에, 하나님은 구원의 문장을 심어 두셨습니다. 사람이 죽음 속에서 슬퍼하는 동안에도, 복되신 하나님은 내려올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5장은 "죽었더라"로 끝나지 않고, "노아"라는 위로의 이름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그 이름의 소망은 한 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 속으로 내려오셨고, 우리의 슬픔을 지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절망하는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열어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28
지금 슬픔 가운데 있는 분, 수고에 지쳐 절망의 문턱에 서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열 개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죽음 속에 내버려 두실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길을 준비하셨고, 그 길의 끝에서 오늘도 두 팔을 벌리고 부르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